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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생활] 태풍이 지나간 자리

by NIHAN_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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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갔다. 한국은 비교적 미미했지만 일본은 땅만 골라서 징검다리 삼아 밟고갔다.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 건 항상 규슈나 오키나와. 내가 살고있는 곳은 산사태나 홍수에는 약하지만 이번엔 그래도 잘 넘긴 것 같다. 내가 살고있는 동네 기준 최대 풍속은 15m/s였다.

14호 태풍 진로

사실 본가에 살았을 때는 이렇게 큰 태풍이 바로 옆을 지나간 적은 (아마도)한 번도 없었으니까 아마 태어나서 겪은 태풍 중에 이번게 제일 강한 놈이었을거다. 거기다 한국의 아파트는 확장공사를 하지않는 이상 바깥창문에 베란다까지 방화유리나 방탄유리같이 튼튼하니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끄떡 없을거라는 인식도 있어서 안심할 수 있지만... 지금은 맨션에서 살고있고 유리창도 딱 하나 밖에 없으니 불안할 수밖에.

 

이번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초속 15m의 바람으로는 유리창은 잘 깨지지 않는다는거다. 방탄유리는 당연하겠지만 창문이 깨지는 주된 원인은 강한 바람으로 날아오는 작은 물건들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돌이라거나, 길에 떨어져있던 쓰레기라거나. 그게 날아와 창문에 부딪히면서 깨지는 경우는 있지만 창문을 꼭꼭 잠가뒀다면 풍압으로 깨지는 일은 없을거라는 뜻이다. 간혹가다 창틀에 틈이 있는 부실한 창문이 있는데, 그 부분을 행주나 걸레로 잘 막아둔다면 위태로워보이기는 해도 깨질 일은 거의 없을거다. 나도 처음에는 덜걱거리는 창문을 계속 바라보면서 이러다 무슨 일 나는거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그 시간에 잠을 잘걸 하고 후회하는 중. 태풍은 좋겠다, 진로가 정해져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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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에 조금만 고개를 들면 태평양이 보이는 곳에 살고있으니 꼭 태풍이 아니어도 계절풍도 심한 편이다. 맨 처음 여기서 살았을 때는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동향에서 살고싶다는 망언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동향 맨션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정말 끔찍하다. 덥고 습한 여름엔 바닥까지 뜨끈해질 정도라 바닥에는 눕지도 못하고 겨울엔 바닷바람이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제일 싸고 무엇보다 자연재해 시 대피시설이라는 점 때문에 이사를 못 가는 중. 평소에도 진도2~3정도 지진은 그냥 일상인 이 일본 바로 옆에 찰싹 붙어있는 불의 고리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지구 반대편에서 진도 몇의 대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하루에 몇 번 씩이나 접하는 지금, 굳이 짐을 싸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곳에서 사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지난 달까지 다녔던 네일아트샵의 나미언니(마나미 씨. 난 그냥 나미언니라 부르고있다. k팝에 관심이 많은 분이셔서 언니라는 호칭의 개념 정도는 아시는 분)한테 들었던 얘기로는 6월과 9월, 큰 호우나 장마, 태풍이 지나가면 계절이 확 변한다고 한다. 그걸 확 체감했던 게 약 2~3일 전,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이었다. 평소에는 런닝만 입고있어도 땀이 주륵하고 났었는데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큰 맞바람이 반나절 불더니 날씨가 서늘해졌다. 가을이 찾아온 듯하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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