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이물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올해 신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가장 시간이 남아도는 2월 중순쯤이었다. 유난히 건조했던 그날, 세수를 하는데 눈에 속눈썹이 들어간 것 같아 물을 갖다 댄 후 거울을 봤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 뾰루지같은 것이 눈꺼풀 안쪽 점막에 나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건조하거나, 살을 베이거나 멍이 들었을 때 치료할 수 있는 약들은 항상 갖고있는 편이지만 눈에 이상이 생겼을 때 쓸 수 있는 약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 만지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낫겠지, 하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이틀 뒤에는 염증이 점막 안쪽으로 더 심해져 흔하게 다래끼가 났을 때 상상되는 퉁퉁부은 눈이 되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간지럽고 거슬려 안과를 찾아봤다. 이전 사랑니 일로 갔던 치과는 워낙 익숙했지만 안과는 한국에 있을 때 눈을 종이에 베였을 때 한 번, 다래끼가 났을 때 두 번 밖에 간 적이 없었어서 조금 긴장해있었다.
안과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얼마나 가깝냐면 내가 항상 학교에 등교할 때나 장 보러 갈 때도 항상 지나치는 곳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3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거기가 안과였는지 왜 눈치를 못 챘는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높은 건물들 외벽에 각종 병원들의 이름이 죽 적혀있는 건물들이 익숙하겠지만 일본, 그 안에서도 지방도시는 약간 달랐다. 마치 2층 주택처럼 지어져 있는 건물 그 자체가 안과였던 거다.
먼저 다래끼가 일본어로 뭔지 몰랐던 나는 전화하기 전에 검색을 했다. 처음에는 '맥립종麦粒腫'이라는 어려워 보이는 한자가 튀어나왔다. 바쿠류우슈우? '뭐 이렇게 발음이 어려워, 말하다가 혀 꼬이겠다'고 생각해 스크롤을 더 내리니 익숙한 단어를 볼 수 있었다. 모노모라이(物もらい)는 직역하면 '물건을 받는다'라는 뜻인데 처음 이 단어를 봤었을 때는 다른 곳에서 세균을 옮겨오는 걸 받아오는 걸 표현한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단어의 유래는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먼 옛날에 다래끼가 나면 다른 집 세 군데에서 쌀을 받아와 그 쌀로 지은 밥을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이 있어 그걸 받아온 뜻으로 모노모라이가 된 거라고 한다.
그런데 병원에 가서 모노모라이라고 말하니 접수하는 곳에 계셨던 간호사분은 모노모라이 대신 메바치코라는 표현을 하셨다. 찾아보니 아무래도 사투리인 것 같았다. 일본도 사투리가 더 찰지다고 생각했다.
안약과 바르는 약을 처방받고 다래끼는 순조롭게 호전되었다. 자외선을 쬐서는 안되는 안약은 다른 자외선 차단 봉투에 담겨 처방받았고, 바르는 약은 하루에 4번씩 다래끼가 난 부분에 바르라고 하셨다.
약에도 유통기한이 있으면 다음번에 또 다래끼가 나면 써도 되냐고 물으니 제대로 보관해두면 써도 되지만 되도록 다시 처방받는 편이 안전할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이있었다. 베이지색의 2층 주택처럼 생겨서 엄청 귀여운 첫인상인 병원이었지만 안에 계신 의사 선생님은 엄청 빠릿빠릿하고 계획대로 일을 처리하면서 공사에 엄청 구분을 둘 것 같은 분이셨다. 난 사람이랑 엮이면 기가 빨리는 편이라 오히려 편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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